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크 시라크 (문단 편집) == 생애 == 파리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1954년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 Po)를 졸업하였다. 특이하게도 대학 시절에 [[프랑스 공산당|공산당]]에 가입했었으며 '''공산당 기관지인 '[[뤼마니테]]'의''' 가두홍보원으로 일한 전력이 있었다.[* 반대로 전임 대통령(이자 시라크가 총리 시절 상관)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젋었을 적엔 [[극우]]였다가 후에 좌파로 전향하였다.] 그래서 미국에 첫 방문을 했을때에는 까다로운 심문을 거치는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조르주 퐁피두]]의 눈에 들어 비서실장이 되고나서는 공산당을 탈당했고 [[1967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1967년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로는 우파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때 공산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면서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하기야 미테랑의 경우도 좌파 정치인이었지만, 핵실험을 반대하는 [[그린피스]] 선단을 공격시켜 사망자까지 나오게 하는 등 우파적인 면모도 있었다.] 풍피두가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농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장관으로 이름 날린다. 이 유명세로 [[1974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74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4위에 그쳤다. 낙선 후 총리에 임명되었는데, 이때는 2기 총리 재임기 때와 다르게 진보적인 정책을 다수 도입했다. 그러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과의 갈등으로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1977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사회당과 공산당이 압승을 거두고 우파가 죽을 쑤는 가운데,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의 친구인 미셸 도르나노를 제치고 첫 직선 파리시장[* 그 이전까지는 파리시장직이 오랜 시간 동안 폐지된 상태였다.]에 당선되었다. [[1986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1986년 총선]] 승리로 프랑스 제5공화국 최초로 동거정부 총리가 되어 처음으로 내정에 실권을 가진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비슷한 시기에 [[민영화]]를 남발했던 [[마가렛 대처]]도 못한 '''[[TF1|공영방송을 민영화하는 등]]''' 극단적인 우파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 미테랑은 본인은 (상대적으로 사고 날 일이 적고 본인의 권한 내에 있는) 외정 관련에만 집중하면서 이미지를 관리했고, 내정 관련으로는 시라크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게 두어서 안 좋은 건 시라크에게 죄다 떠민 측면도 있었다.]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졌고, [[198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88년 대선]]에서 좌파 후보 [[프랑수아 미테랑]]한테 대패하였다.[* 시라크도 산전수전 다 겪은 구렁이과 정치인이었다지만, 미테랑에겐 유독 약했다. 1988년 대선 당시에도 TV 토론장에서 기선 제압을 하겠다고 "지금 우리는 대통령과 총리가 아닙니다. 당신과 나는 대등한 후보로 이 자리에 나와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미테랑 씨로 부르겠습니다."라고 선빵을 날렸다가 미테랑이 [[http://www.ina.fr/video/I04261065|'''당신 말이 맞소, 총리!(Vous avez tout à fait raison M. le Premier Ministre)''']]라고 반격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찾은 게 대표적.] 이후 와신상담을 노리다가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95년 대선]]에서 같은 우파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를 제치고 2위(1위는 [[프랑스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를 차지하면서 결선투표에 진출하였고, 2차 선거에서 예상보다는 득표차가 적게 나왔지만 좌파의 대표 조스팽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샤를 드 골]]처럼 분위기 반전을 위해 1997년에 [[1997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조기총선]]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좌파가 대거 승리하면서 죠스팽이 총리가 되었고 우파가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하며 시라크는 실권을 잃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프랑수아 미테랑]] 시절부터 문제가 되어왔는데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때까지만 해도 항상 보수쪽에서 대통령과 의석과반을 동시에 차지해 문제가 없었으나, 1986년에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 미테랑과 우파 총리 시라크로 이루어진 [[이원집정부제|좌우동거]] 정부가 탄생하게 되면서 정치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미테랑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당 중진을 총리로 임명하려 했지만, 문제는 여소야대라는 특성상 범우파가 불신임안을 던지면 삼일천하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테랑은 우파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했고, 각료 선임을 비롯한 내치의 전권을 시라크에게 넘겨주었지만, 핵발사권 등 군사, 외교 분야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 선언하면서 국방장관와 외무장관의 임명권을 행사했다. 이후 이것이 일종의 규칙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국민의회]]의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를 맞추고, 선거 시기를 일치시켜 [[동거정부]]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 프랑스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기존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5년간 외교에만 전념하다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2002년 대선]]에서 총리 시절의 경제정책에 힘 입은 죠스팽과 접전을 벌였다. 예상대로 시라크는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는데, 좌파 후보들의 난립으로 좌파성향 유권자들의 표가 분산되면서 죠스팽이 3위로 밀려나고 극우파인 [[국민연합(프랑스)|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벌어졌다. 결국 결선투표에선 중도파와 좌파들까지 오로지 르펜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시라크에 '''몰표'''를 던지면서 압도적인 득표율(역대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더 자세한건 [[2002 프랑스 대선]] 참고.) 직후 이어진 [[2002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도 우파 연합이 승리하여, 대통령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http://mnews.sbs.co.kr/news/endPage.do?newsId=N0311417084|여기에 여세를 몰아 3선까지 도전하고자 했으나]] 너무 많은 나이가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임기 말에는 고령으로 인해 [[보청기]]를 착용한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는데, 대통령실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만큼 고령에 의한 건강 관련 우려가 많았다.] 특히나 2005년에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유럽헌법안이 부결되면서 [[레임덕]]이 극심하게와 결국 2007년도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원래는 시라크의 정치적 제자였으나, 1995년 대선에서 [[에두아르 발라뒤르]] 후보를 지지하면서 시라크의 눈밖에 났고, 1997년 총선에서 낙선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후 시라크의 영원한 오른팔 [[알랭 쥐페]] 전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선거권을 박탈당하면서 어부지리로 UDF 후보 자리를 따냈지만, 시라크는 1995년의 배신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이후에도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2012년 대선]]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2017년 대선]]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며 대놓고 사르코지를 골탕먹였다.] 대통령직을 넘기면서 재임 12년만에 퇴임하였다. 퇴임 후 4년만에 과거 파리 시장으로 재직 당시 측근 28명을 시청 직원인 것처럼 위장해 월급을 준 혐의로 기소돼 파리 지방법원으로부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510636.html|징역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TF1]]과 유착 의혹을 받기도 했다. 1987년 TF1을 기업 부이그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민영화한 장본인이 바로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 본인이었기 때문. 그래서인지 TF1은 한동안 자크 시라크를 적극 지지하는 논조를 펼쳤다고 한다. 2014년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https://www.francetvinfo.fr/politique/jacques-chirac/mort-de-jacques-chirac-les-francais-lui-rendent-hommage_3633643.html|2014년도의 모습]]을 보면 이미 이 시점부터는 그렇게 건강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